2022. 6. 7. 12:17ㆍ카테고리 없음
최초의 양산 자동차
세계 최초의 양산 가솔린 자동차는 1886년 메르세데스 벤츠사의 삼륜차로 그 이름은 "페이턴트 모터바겐"이었다.
가솔린을 연료로 사용했고 최초의 양산 동력 자동차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증기로 달리는 자동차가 있었고, 가솔린 엔진을 얹은 자전거 형태의 오토바이도 있었다.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자동차의 외형을 가지고 가솔린 엔진을 얹은 차량 중에 최초인 자동차를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페이턴트 모터바겐 자동차는 특허도 인정받았으나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그 이유는 불편하고 소음이 큰 이동수단이었기 때문이었다. 연료를 지속적으로 보충을 해줘야 했으며, 엔진이 자주 과열되었고 그때마다 엔진을 냉각시켜주어야 했다.
당시 도로도 자동차에 맞게 잘 닦여 있는 도로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래도 과거의 교통수단처럼 말을 타고 다니는 것이 오히려 더 편했을 것이다.
말은 물과 풀을 먹이면 얼마든지 원하는 목적지까지 대려다 주었으니까..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자동차
우리나라에 언제 자동차가 처음으로 들어왔는지 정확한 기록은 알 수는 없지만 1903년 고종 황재 즉위 40주년에 맞춰 포드사의 자동차가 들어온 것으로 많은 역사학자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좀 더 흥미로운 것은 당시 자동차를 들여온 사람은 미국 공사 "알렌"이었고, 그 차가 포드인지 캐딜락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다만 당시 상황이나 여러 가지 사료들로 미루어 볼 때 포드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당시 1903년은 미국에서 포드와 캐딜락이 창업한 해였고, 조선 26대 왕인 고종 황재의 즉위를 기념하기 위해서 미국차를 들여왔으나, 조선반도 어디에도 운전을 할 줄 아는 조선인은 없었고, 운전할 줄 아는 외국인도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일본인이 이 차를 운전했다.
지금이야 대부분 성인들은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어서 운전이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자동차도 없던 시절이라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에 미국에서 조선의 인천항까지 자동차를 가져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운송 수단이 발달이 안되었기 때문에 수개월 동안 배를 타고 인천항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고종 황재가 그 자동차를 탔다는 기록은 없다.
그럴 만도 한 것이, 1904년 러일 전쟁이 발발했고 해당 자동차는 전쟁 중에 소실되었다. 자동차를 들여온 지 1년 만에 소실되었으니 고종 황재가 자동차를 탔다는 기록이 남이 있지 않는 이유도 이 짧은 기간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아쉬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에 조선에 두 번째 자동차가 들어온다.
이번에는 영국 자동차와 미국 자동차가 각 1대씩 들어오는데, 영국차는 다임러의 리무진이었고, 미국차는 GM의 캐딜락이었다.
첫 번째 자동차가 들어온 지 7년 만이었다.
당시 조선에서 자동차를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은 커다란 쇳덩이가 굉음을 내면서 달리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대부분 사람들은 혼비백산했으며 하던 일도 내팽개치고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동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소나 말들도 굉음을 내는 자동차에 놀라 날뛰기 시작했다.
지금은 자동차 소음기가 발달해서 자동차가 골목길을 지나가도 조용하지만 당시에는 기술 발전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굉장한 소음을 냈었다.
최초의 자동차 안전장치
지금까지 자동차의 안전장치로 안전벨트나 에어백, 차선 보조 장치와 ABS 브레이크 등의 많은 차량 부가 장치가 인체를 보호하는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안전장치는 언제 어떠한 이유로 개발이 시작되었을까? 다시 과거로 돌아가 보면, 자동차의 발전이 지속화되면서 자동차는 빠른 속도를 가지게 되었고, 자동차만 다닐 수 있는 자동차 전용 도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기차 전용 철도가 있듯이 자동차가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인프라의 요인과 산업 발달이 가속화되어 차량은 비용을 지불하고 이동 수단을 빌리는 개념에서 개인 소유의 개념 을로 발전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88년도 올림픽과 더불어 자동차는 부의 상징과 권력의 상징으로 너도나도 개인 소유의 자동차를 구매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최초의 자동차 안전장치는 자동차를 타게 되면 반드시 법적으로 착용해야 하는 안전벨트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 안전벨트는 1936년 볼보에서 처음 만들었는데, 볼보 직원이 독일의 아우토반을 달릴 때 2 점식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2 점식이란 1자로 가슴을 가로지르는 안전벨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다가 3 점식 안전벨트가 개발되고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볼보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안전벨트를 특허 사용료를 받지 않고 누구나 사용하도록 했다.
에어백은 메르세데스 벤츠사에서 개발했는데 개발 기간만 4년이 걸렸다. 범퍼 안쪽의 센서를 장착해서 에어백이 터지는 원리이다. 1971년 특허를 냈으며 벤츠 S클래스에 처음 탑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랜저가 1992년에 처음 에어백을 달고 출시했다.
최초의 전기차는 가솔린차보다 먼저 개발되었다
앞서 설명한 벤츠사의 "페이턴트 모터바겐"보다 3년 먼저 개발되었다. 이 전기차도 3륜 차였으며 프랑스 발명가 "구스타프 투루베"가 납축전지와 전기모터로 자동차를 만들었으며 파리를 시험운행까지 했다. 물론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개발은 여기까지만 진행되었고 전기차의 양산은 영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영국인 "토마스 파커"가 전기차의 양산을 처음 시작했으며 "구스타프 투루베"의 전기차와 마찬가지로 납축전지와 전기모터를 사용하였다.
납 축전지의 특성이 시간이 지날수록 전류가 급감한다는 단점이 있었고, 순간 가속은 좋았을 것이나 가속 연속성은 많이 떨어졌을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납 축전지이기 때문에 충전에서 시간이 상당히 많이 소요됐을 것이다.
요즘 전기차는 엄청난 기술 발전으로 10분만 충전해도 하루나 이틀까지도 출퇴근이 가능한 수준이 되었는데, 아무래도 이러한 과거의 기술 개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발전해 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지금이야 편하게 마트가서 장보는 사이에 전기차 충전도 하고, 어딜가나 주유소가 있어서 주유하고 얼마나 편한 세상을 살고 있는가 ?
다만 과거의 노력하는 과학자와 발명가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발전해 온 것이고, 이과정은 불과 100년만에 이루어낸 인류의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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