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B(Universal Serial Bus) 개발에 대한 일화

2025. 9. 24. 11:39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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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빠른 PC 성장으로 인하여 각 가정에 하나씩은 가전제품처럼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제품이 되었다.

당시 PC에는 직렬 포트, 병렬 포트, PS/2 포트, SCSI, 게임포트 등 다양한 단자가 있었는데 프린터 또는 마우스나 키보드 입력 단자들은 제각각이었다.

 

PC의 각종 포트들
PC의 각종 포트들


기기마다 연결 방식이 달라서 초보자가 설치하기 어려웠으며 드라이버 설치와 IRQ(하드웨어 인터럽트) 충돌 같은 문제점이 있었다.

당시에 PC를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한번 쯤을 겪었을 문제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인텔 중심의 컨소시엄이 (1994~1995) 결성된다.

바로 이런한 결성은  USB(Universal Serial Bus)  의 탄생의 시발점이 되었다.

1995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95가 나오던 시절이었다.
컨소시엄에는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IBM, 컴팩, NEC, DEC, 노텔 등이 참여하게 된다.

흔히 ‘USB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텔의 아자이 바타(Ajay Bhatt)가 말하길 USB는 혼자 만든 게 아니라 팀워크의 결과라고 강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첫 USB 사양이 발표 (1996, USB 1.0)되고 그 속도는 1.5 Mbps(저속), 12 Mbps(전속) 였으며 주된 용도는 플러그 앤 플레이(자동 인식)와 하나의 포트로 여러 기기 연결(허브 구조)이라는 성과를 이루어 낸다.

또한 소형 기기에 전력 공급(최대 5V, 100mA)이 가능했다.

그러나 초기엔 잘 안 퍼졌는데 이는 제조사들이 기존 포트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러다가 1998년 애플의 iMac G3 가 과감히 기존 포트를 모두 없애고 USB만 탑재하는 제품이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후 키보드, 마우스, 프린터 제조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USB 를 채택할 수뿐이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윈도우 98부터 USB 본격 지원하면서 USB 인터페이스는 폭발적인 확산의 시대를 맞이한다.

USB는 인텔 엔지니어 아자이 바타가 USB를 주도했지만, 사실 수십 명의 팀원과 여러 기업이 함께 개발한 결과로 탄생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아자이 바타는 당시 특허에서 개인적 이득을 얻지 못했고, USB로 직접 돈을 번 적이 없다.
나중에 인텔이 만든 광고에서 “USB의 아버지”로 대중에 알려지면서 유명해진다.

초창기 PC 업체들은 USB 도입을 꺼렸지만 기존 포트 시장(케이블, 확장 카드)이 큰 산업이었기 때문에 확산 속도를 높였다.
HP와 IBM조차 내부에서는 “굳이 필요하냐”는 반대 의견이 많았다는 것도 흥미로운 역사 속 사실이다.
만약 애플의 iMac이 아니었다면 USB는 표준으로 자리 잡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단점도 있었는데 USB-A 단자는 방향이 정해져 있어서 꽂을 때 헷갈리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제조원가 절감과 기판 설계 단순화를 위해 ‘한쪽 방향’으로만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자이 바타 본인도 훗날 “그건 우리의 실수 중 하나였다”고 인정하였다.

USB와 경쟁했던 표준 프로토클도 있었는데 IEEE 1394(파이어와이어, FireWire)이다.

애플은 FireWire를 강하게 밀었는데 FireWire는 속도가 더 빠르고 전문 장비, 즉 비디오나 오디오 편집에 널리 사용되었지만 칩셋 가격이 USB 보다 고가였던 문제와 호환성 부족으로 대중화하는데 실패하였다.

결국 저렴한 USB가 시장을 장악하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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