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22. 14:15ㆍ카테고리 없음
원래는 수입 및 도소매업을 하던 박정부 (1949년 생) 씨가 1990년대 초반 IMF 외환위기를 전후로 값싸면서도 생활에 꼭 필요한 소품들을 공급하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 판단하에 창업한 회사이다.
초기 이름은 아스코이븐프라자(ASCO EVEN PLAZA)였지만 지금은 다이소라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지만, 1992년 첫 시작은 “아스코이븐플라자”라는 이름이었다.
이후 일본 100엔샵 다이소산교(大創産業)와 제휴하면서 지금의 “다이소” 브랜드로 바뀌게 된 것이다.
외환위기 시절 “싼 물건”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다이소가 급성장하게 된다. 당시에는 1000원 균일가 정책이 당시 경기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일본 다이소와는 단순한 라이선스 관계가 아니라, 상품 소싱과 운영 노하우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일본 기업 소속”이라는 오해도 커서, 실제로는 한국 독자 기업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도 했다.
초기에는 대부분 중국산 저가 제품이 많았으나, 점점 국내 중소기업 제품을 적극적으로 입점시키며 사업을 확장해 나간다..
초창기엔 “싸구려 가게”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최근에는 가성비 + 실용성 + 디자인을 강조하면서 젊은 소비자층까지 흡수하면서 중소기업 판로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원래 1000원 균일가를 고집했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과 제품 다양화 요구로 2000원·5000원 등 다층 가격대가 추가되었으며 창업자는 초기에 “균일가를 무너뜨리는 건 정체성의 위기”라며 강하게 반대했지만, 시장 요구를 받아들여 확장하게 되었다.
전국 매장을 빠르게 늘릴 수 있었던 비결은 자체 물류 시스템 구축. 박정부 회장이 “다이소의 진짜 경쟁력은 물류에 있다”라고 강조할 정도였다.
창업자 이야기를 좀 해보자면
박정부 씨는 창녕 출생으로 1970~80년대 생활용품 수입 및 도매업을 하던 분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유통구조가 불안정하고 대기업 납품 의존도가 높아 항상 어려움을 겪는다.
그는 서민들이 값싸게 살 수 있는 생활용품 가게를 만들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1992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아스코이븐 플라자라는 균일가 매장을 처음 오픈하였다,
당시에는 1000원짜리 생활용품만 파는 가게라는 개념이 처음 도입된 시기였고 가격이 항상 같으니 소비자들은 많은 구매를 하게 된다.
그러다가 1997년 IMF가 경제를 파탄 내게 되고 오히려 저렴한 가격이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2001년에는 일본 100엔 샵업체인 다이소산교와 제휴를 하면서 브랜드명을 다이소로 변경한다,
그러다 보니 일본 기업기업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오히려 다이소는 국내 기업이라고 홍보를 해야 하는 일도 발생하였다.
지금의 다이소는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의 성지처럼 되어 있다.
가격의 부담이 없고 저렴하며 무엇이든 파는 매장이라는 인식이 소비 구조를 바꾸어 놓았다.
다이소라는 브랜드로 전환하여 1호점은 서울 종로구 종로 2가에 매장을 오픈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이소 브랜드 전의 1호 매장은 앞서 언급한 신사동의 아스코이븐 프라자 매장이 1호점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