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27. 11:08ㆍ카테고리 없음
프리츠 하버 (Fritz Haber, 1918년 화학상)
생명을 살리고, 죽음도 가져온 과학자이다 .
암모니아 합성법(하버-보슈 법) 개발 인류 식량 생산 혁명을 이루어 냈지만 1차 세계대전 중 독가스(염소가스) 무기화 주도
"인류를 먹여 살린 영웅이자, 학살을 초래한 악마"로 평가되었다.
노벨상 수상 후에도 독가스 연구를 지속하였으며 아내는 이를 비관해 자살하였다.
나치 집권 후 유대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독일에서 쫓겨나 망명 중 사망하였다.
마리 퀴리 (Marie Curie, 1903년 물리학상 & 1911년 화학상)
그녀는 노벨상은 수상했지만 방사능으로 목숨을 잃었다. 방사능 연구의 선구자이며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장시간 방사능에 노출되어 재생불량성 빈혈로 사망하게 된다. 당시에는 방사능의 위험성을 몰랐으며, 연구 중 보호 장비 없이 방사성 물질을 다루었기 때문에 비운의 운명을 맞이한다.
그녀의 실험 노트는 여전히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었으며 이 노트는 현재 특수 보관 중이다.
라이너스 폴링 (Linus Pauling, 1954년 화학상 & 1962년 평화상)
미국 정부의 탄압이 심했던 과학자이다.
화학 결합 이론 정립 및 반전(反戰) 운동 선도을 한 과학자이다. 냉전 시대 반핵 운동 주도 미국 정부의 감시 대상으로 여권 취소와 강연 활동 방해로 인해 노벨상 시상식 참석도 어려웠다.
후에 명예를 회복했지만, 과학계에서는 정치적 활동이 그의 연구를 방해했다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1921년 물리학상)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으로 받은 게 아니다. 상대성이론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으나 노벨상은 광전 효과 연구로 수상 하였다.
당시 상대성이론이 너무 난해해 노벨상 위원회가 인정하지 않았으며 노벨상 상금을 이혼 위자료로 사용하였다. 그는 전처 밀레바에게 전액 상금을 지급하였다.
전쟁 중, 독일에서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Boris Pasternak, 1958년 문학상)
노벨상을 거부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닥터 지바고"로 소비에트 체제의 억압을 묘사한 소설을 썻다.
그렇기 때문에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 후, 소비에트 정부의 극심한 압박을 받게된다.
따라서 "소련의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강제 노동 수용소에 보내질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
그는 결국 수상 거부하였고 소련 붕괴 후인 1989년, 그의 가족이 뒤늦게 노벨상을 수락하였다.
한스 알브레히트 베테 (Hans Bethe, 1967년 물리학상)
태양의 핵융합 원리 규명 (CNO 사이클)을 하였으며 평생 핵무기 개발과 평생의 죄책감으로 살았다.
맨해튼 프로젝트(원자폭탄 개발) 참여하여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후 평생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후 핵무기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다니엘 카너먼 (Daniel Kahneman, 2002년 경제학상)
경제학자가 아닌데 경제학상을 받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심리학자로서 경제적 의사결정 연구 (행동경제학 창시자)를 하였다.
카너먼은 경제학자가 아니었으며, 경제학 연구를 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경제학을 모른다"라며 수상 후에도 본인의 학문적 정체성에 혼란을 느꼇다.
이후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이것이 경제학이냐?"라는 논쟁이 발생하였다.
김대중 (2000년 노벨 평화상)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한 대한민국의 최초 노벨상 수상자이다.
남북 정상회담(2000년) 개최 및 햇볕정책을 통한 한반도 평화 기여하여 노벨상을 수상한다.
김대중은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수차례 암살 및 투옥 위기를 겪었으며 1973년 일본에서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되었으나 극적으로 구사일생 하였다.
군사독재 시절을 거치며 민주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신념을 유지하여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지만, 이후 회담과정에서 대북 송금 논란 발생하였는데, 이는 김대중의 지시가 아닌 하위 공직자가 한 행위라 하여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을 수용한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