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지스터의 발명과 비하인드 스토리

2025. 2. 26. 14:52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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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존 바딘, 윌터 브래튼, 윌리엄 쇼틀리
왼쪽부터 존 바딘, 윌터 브래튼, 윌리엄 쇼틀리

 

 

트랜지스터는 현대 전자기기의 핵심 부품으로, 1947년 미국 벨 연구소(Bell Labs)에서 존 바딘(John Bardeen), 월터 브래튼(Walter Brattain),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 세 명의 과학자가 개발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여러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트랜지스터가 필요했던 이유로는 1940년대까지 전자 회로의 핵심 부품은 진공관(Vacuum Tube) 이었는데 진공관은
크기가 크고 전력 소모가 많으며 쉽게 고장나는 단점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더 작고 효율적인 전자 부품이 필요해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벨 연구소에서 반도체 연구가 시작되었다.

 

진공관
진공관


1945년 윌리엄 쇼클리는 "반도체를 이용해 증폭기를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지만, 직접 실험을 하지 않고 이론적인 접근만 했었다.
1947년: 바딘 & 브래튼이 실험에 성공하게 되고 쇼클리의 연구팀에서 존 바딘(물리학자)과 월터 브래튼(실험 물리학자)이 실제 실험을 수행했다.
실리콘이 아닌 게르마늄을 사용한 점접촉형 트랜지스터를 개발하여 전자 신호를 증폭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1947년 12월 16일, 트랜지스터가 최초로 동작하는데 성공 한다.

 

트랜지스터
트랜지스터


쇼클리는 자신이 주도한 연구에서 바딘과 브래튼이 먼저 성과를 내자 질투심을 느꼈다.
이에 반발하여, 쇼클리는 연구팀과의 협력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트랜지스터(접합형 트랜지스터, Junction Transistor)를 개발했다.
이후 1951년 접합형 트랜지스터를 발표하며 이 방식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트랜지스터의 원형이 된다.

1956년, 트랜지스터 발명으로 존 바딘, 월터 브래튼, 윌리엄 쇼클리는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존 바딘은 노벨상을 두번이나 받은 위인이다.
하지만 쇼클리는 연구팀과의 갈등으로 인해 수상 당시에도 관계가 악화된 상태였다.
쇼클리는 독선적인 성격으로 연구원들을 무시했고, 결국 많은 동료들이 떠났다.
그는 이후 반도체 기업을 창업했지만 실패했고, 말년에는 우생학(인종 우월주의적 연구) 논란으로 학계에서 외면받게 된다.

트랜지스터의 발명은 반도체 혁명을 일으키며 현대 기술의 발전을 이끌었다.
진공관을 대체하며 컴퓨터, 스마트폰, 인터넷의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마이크로칩과 집적회로(IC) 기술 발전으로 IT 산업의 초석이 되었다. 반도체 산업 발전으로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탄생을 촉진시키는 역할도 하였다.

트랜지스터는 현대 전자공학의 가장 중요한 발명 중 하나이며, 그 개발 과정에는 협력과 갈등, 천재 과학자들의 경쟁이 얽혀 있었다. 특히 쇼클리의 독단적인 성격과 팀 내 갈등은 연구 성과에 영향을 미쳤고, 이후 반도체 산업 발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트랜지스터의 발명은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인류의 삶을 변화시킨 혁명적인 사건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트랜지스터

1965년, 금성사(현 LG전자)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생산하면서 한국에서 트랜지스터를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때까지 트랜지스터는 해외에서 수입하여 조립하는 수준이었고 1967년, 삼성전자가 설립되면서 전자 산업이 성장하기 시작한다.

 

1980년대부터 한국은 단순 트랜지스터에서 집적회로(IC)와 메모리 반도체로 기술을 확장하게 되고 1983년,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DRAM(메모리 반도체) 산업으로 전환하였다.

이후 한국은 트랜지스터보다는 반도체 집적회로(IC) 및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 집중 하였으며, 글로벌 반도체 강국으로 성장하는 나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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