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8. 17:02ㆍ카테고리 없음
니콜라 테슬라
테슬라 하면 바로 떠 오르는 단어가 전기차와 일론 머스크일 텐데,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를 존경해서 회사명을 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그리고 음악을 좋아 하는 사람이라면 Love Song으로 유명한 록밴드 테슬라도 떠 올릴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테슬라는 교류 전기의 아버지라 불리는 과학자이다.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는 1856년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태어났다. 지금 이곳은 현재 "크로아티아"이다.
테슬라는 어린시절에 시 쓰는 것을 좋아했고, 발명하는데 많은 관심이 있었다. 그중에도 특히 물리학이나 전기장치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에디슨과 테슬라
1882년 테슬라는 에디슨 전화회사 파리 지사에 입사하게 된다. 당시 테슬라는 누가 봐도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능력 때문에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미국으로 건너가 에디슨을 만나게 되고, 에디슨은 DC발전 설비를 개선할 수 있드면 50,000$를 주겠다고 제안을 한다. 그 제안을 받고 테슬라는 몇 달 만에 에디슨의 DC 모터를 실제로 개선하게 되는데, 에디슨은 약속했던 50,000$를 지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본격적인 미국인이 되면 미국식 농담에 감사하게 될 것”
1887년 테슬라는 이 문제로 서로 충돌하게 되고, 에디슨의 회사를 떠나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설립하다.
에디슨이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까 ? 만약 이 당시 에디슨이 약속을 지켰다면 테슬라의 놀라운 발명이 탄생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역사는 이렇게 흐른다.
전류 전쟁
에디슨은 직류 전기만이 제일 적합하고 사용하기 용이하다고 생각을 했었고 모든 발명품도 직류 기반 제품이였다
반대로 테슬라는 교류 전기가 더 사용하기 좋고 유용하다고 생각을 했다.
테슬라의 연구실은 에디슨의 사무실에서 가까운 곳이었으며 이곳에서 AC 전원 시스템을 설계를 했다. 그리고 테슬라의 AC 모터는 에디슨의 DC 모터보다 투자할 가치가 크다는 소문이 있었다. 참고로 3상 교류 전력 전송 시스템도 테슬라의 발명품이다.
이런 이유로 전류 전쟁이 시작된다.
이 전류 전쟁에서 테슬라가 승리를 하게 되는데,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에서 테슬라의 교류 전기로 형광등과 전구를 밝힌 것이다. 이로써 긴 전류 전쟁은 끝이 난다.
테슬라 코일
테슬라의 발명품 중에 고주파와 고전압을 발생시키는 코일을 발명하게 되는데, 이 발명품을 간단히 설명하면 작은 전압을 코일을 통과시켜 수천 볼트(v)의 전기를 만드는 것이다.
1889년 테슬라는 이 발명품을 만들게 되고 테슬라 코일로 지금까지 불린다.
실제로 테슬라 코일로 번개를 만드는 데 성공하기도 한다. 당시 번개를 인위적으로 만든 행위 자체도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테슬라 코일의 원리를 이용해서 1891년 테슬라 유도 코일이 발명이 되면서 라디오나 TV 또는 여러 전자 장비에 사용되는 업적을 남겼다.
1891년, 이해는 테슬라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날이기도 하다.
1893년 국립 전등 협회 연설에서 최초로 무선 통신 시범도 보였다.
이런 연구 중에 지상파를 발견하게 되는데, 지구가 전도체로 사용될 수 있고 특정 전기 주파수에서 공진을 하게 됨을 증명한다.
당시 이러한 테슬라의 발명품을 조롱하는 과학자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전기는 테슬라의 업적에서 기인한다.
테슬라의 자폐증
1912년 테슬라는 의심스러운 행동을 한다.
강박 장애 증상을 보였고, 자폐 증상을 보였다.
테슬라는 사람들과 악수를 한 뒤에는 반드시 손을 씻는 등 청결에 집착을 했고, 숫자 3에 집착을 했다.
물품이나 사물은 3세트로 구성을 했으며, 식탁에는 18개의 냅킨을 놓아야 했다.
길을 걸을 때는 걸음수를 세었고, 여성의 귀걸이에 대한 강렬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생애 말년에는 비둘기와 백인 여성에 집착하게 된다. 특히 비둘기는 인간처럼 사랑했다.
테슬라의 죽음
테슬라는 1943년 뉴욕의 호텔에서 사망한다. 그의 나이 86세였다.
사망 당시 테슬라는 빚을 지고 사망했으며, 위대한 업적에 비해 큰 부는 누리지 못한 것 같다.